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빅토리아 여왕 (문단 편집) ==== 인도 여제 ==== [[파일:Victoria_Empress_of_India_Disraeli.jpg]] [[디즈레일리]]가 [[인도 제국]]의 왕관을 여왕에게 바치는 것을 풍자한 주간지 '펀치(Punch)'의 만평(1867년, 존 테니얼(John Tenniel)[* 당대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로, 아주 다양한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 이외에도 나무위키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만평으로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 항목에 실려 있는 비스마르크 퇴임 만평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테니얼이 아주 유명한 이유는 [[루이스 캐럴|따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있으니...]]]).[* 만평의 캡션에 "헌 왕관을 새 왕관으로 바꿔 드립니다!"(New crowns for old ones!)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쓰여 있기야 그렇지만 실제로는 '''바꾼''' 게 아니라 새로운 관을 '''추가한''' 것임에 유의.] [[파일:571721-1448557016.jpg]] 여왕과 [[인도인]] 시종 두 사람[* 아래 미디어 매체에 나온 것처럼 [[빅토리아&압둘|2017년에 영화화]]되기도 했다.] 1857년 [[세포이 항쟁]]을 진압한 영국은 그동안 인도를 간접통치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동인도 회사]]를 해체하고 [[인도 제국]]을 통해 본격적인 직접 통치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무굴 제국]] 최후의 황제였던 [[바하두르 샤 2세]]가 폐위되었으며, 그나마 꼭두각시로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무굴 제국은 330여 년만에 그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여왕은 인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은 걸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군주로서의 책무를 다시금 절감했다는 감상을 일기에 적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874년 총선거를 통해 다시 집권한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는 여왕의 공식 칭호에 '''인도 여제(Empress of India)'''의 칭호를 덧붙이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이것은 기존 무굴 황제 대신에 영국의 왕이 인도의 황제로서 인도 각지의 제후들 위에 군림하는 형태로 변경한 것이다. 영국은 [[식민지]]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영국화해 영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하는 데에 인색했던 대신 영국의 지배에 저항하지만 않으면 되도록 기존 사회체제에 손을 대지 않는 방식을 취했다. 그래서 영국은 식민화 과정에서 현지의 토착 지배자들과 타협해 영국의 왕이 그들 위에 존재하는 더 높은 군주라는 관계를 정립한 일이 여럿 있었다. 예를 들어 [[피지]]에서는 (여)왕에 대응되는 현지어 표현을 '대추장'이라고 번역했다. 말 그대로 피지 각지의 추장들 위에 군림하는 더 큰 추장이라는 의미. 영국의 왕에게 황제라는 칭호를 부여해 통치한 곳은 인도가 유일했지만.[* 이렇게 유럽 국왕에게 비유럽 지역 [[식민지]]의 전통적인 황제 칭호를 부여해 격을 높이는 --똥폼-- 방식은 나중에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가 따라했다. 무솔리니 시기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 제국을 침공했을 때 무솔리니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에게 에티오피아 황제의 칭호를 바친 것. 하지만 국제사회가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지배를 인정하지 않아 대부분의 국가들은 그 황제 칭호를 인정해주진 않았다().] 디즈레일리가 굳이 빅토리아 여왕에게 인도 황제 칭호를 부여한 동기 중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어머니와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이다.]도 있었다. 빅토리아 공주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왕세자[* 훗날의 [[프리드리히 3세(독일 제국)|프리드리히 3세]]]한테 시집을 갔는데, 이후 1871년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해 [[독일 제국]]을 만들었다. 그러자 영국 국내에서는 "프리드리히가 즉위하면 빅토리아 공주는 Empress[* 알다시피 영어에서 (그리고 대부분의 유럽어에서) 남성 군주의 배우자와 여성 군주의 칭호 형태는 동일하다. 즉, 여제와 황후의 표현이 동일한 것. 물론 굳이 구분을 하자면 Empress '''Consort'''라고 배우자임을 나타내주면 구분을 할 수 있긴 하다.]가 되는데 어머니는 Queen이어서 칭호가 서로 역전된다"는 불만이 돌았다고 한다. [[영국인]]들 스스로 [[대영제국]][* 연합왕국(United Kingdom)은 본토에 한정해 쓰는 표현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영국 본토뿐만 아니라 본토 외 속령까지 아울러 부르던 명칭이 바로 대영제국(British Empire)이다. 한국에선 양자를 많이 혼동하지만 실제론 구별해야 하는 표현이다.]이라고 할 정도로 세계 최강국인데 신생 독일 제국보다 못날 것도 없다는 자존심도 있었을 것이고. 근데 그렇다고 그 동안 익숙하게 잘 써온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란 국호를 갑자기 무슨무슨 제국으로 고치고 여왕의 칭호를 여제로 바꾸는 것은 여러모로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마침 영국이 인도를 완전히 장악[* [[포르투갈]]령이었던 [[고아(인도)|고아]](Goa), 프랑스령이었던 퐁디셰리처럼 예외가 있긴 했다.]함에 따라 디즈레일리가 묘수를 낸 것이다. 영국 여왕을 인도 여제로 군림하게 함에 따라 인도의 기존 지배 질서 위에 영국이 지배력을 행사하게 만들면서 칭호 문제로 촉발된 영국인들의 자존심 문제를 적당히 해결한 것. 영국 국내에서는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비아냥이 없지는 않았지만[* 위 풍자화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디즈레일리의 제안은 관철되었다. 따라서 1877년 [[1월 1일]]부터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의 여왕이자 인도의 여제이신 빅토리아 폐하'로 불리게 되었으며 109캐럿짜리 인도산 [[다이아몬드]] [[코이누르]]를 제국 왕관에 박아넣었다. 빅토리아 이후로 영국의 국왕들은 1948년까지 인도 황제의 칭호를 같이 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